12.03
김운용 목사님(장신대 총장)
역대하 20:1-4
리더가 되는 것: 책임이 동반되는 것. 위기를 마주할 때, 이를 뛰어 넘어야되는 책임
본문:
사해 남쪽 지역 민족들이 연합을 이루어 유다를 치려 다가오고 있었고, 이에 당시 유다 왕이었던 여호사밧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여호사밧이 행한 일은
1. 백성들과 함께 금식 기도를 드린다.
2. 군대의 가장 앞에 노래하는 자들을 세워 행진하게 한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좋은 방법인가? NO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는가? NO
여호사밧 뿐만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를 보며 자라온 여호사밧이 그들과 같이 행한 일은 위기를 마주할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것 중 하나는 말씀을 붙잡는 것.
기독교 변증가 팀 켈러는 그가 쓴 책<기도>를 통해 자신이 암에 걸리고, 인생의 위기가 찾아올때 한 일은 매일 밤 9시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목사님도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나 위기를 마주할 때 항상 찬양을 드렸다.
주만 바라볼지라,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우리가 마주하는 광야, 즉 고난은 어떠면 주님이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과정. 나로 하여금 억지로라도 주님을 찾게하는 훈련이다.
한 주, 한 주가 정말 같은 사람이 보냈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우리만큼 갭이 컸다. 잘 해낼수 있고, 이젠 뭐 내 일상이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180도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이 찾아올때 뭐가 달랐나 싶으면 말씀 묵상, 찬양 그리고 기도였다. 시간이 지나며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나에 대한 혐오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숨겼다. 못난이, 하찮은 것, 등등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숨어 지내면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이런 나를 하나님이 왜 붙잡지 않아주시지 하는 생각도 들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성경이라도 보자라는 생각에 출애굽기를 읽다 모세가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보고 살인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스라엘의 리더, 홍해의 기적, 십계명 등 그 수많은 상황가운데에 주님과 동행했던 모세가 그러고보니 사람을 죽였었네. 그러면 내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주님은 택하신 이들이 있을테니 나는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살인 직후 광야에서 생활한 40년을 그려보니 그리 쉽게 할 말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주님은 모세를 더 리더의 모습에 맞게 가꾸신다는 얘기를 보며 크신 주님의 계획을 알수 있었다.
나도 어느 순간 내 힘으로 하려고 했던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 이리 시도해보고, 저리 시도해보아도 쳇바퀴 돌아가듯 같은 레파토리가 진행되는 듯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염치없고, 죄송하지만 나는 다시 엎드릴수밖에 없다. 그저 죄인인 나를 시인하며 다시 한번 나를 거두어가시길 바란다. 그리고 항상 무너지는 나의 모습에는 말씀과 기도가 없었다. 이러한 나 자신을 기억하며 다시 살아내자.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신다. 여호사밧이 그러했듯, 전심으로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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