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Timothy Keller)
두란노
초판 20170508
31쇄 20180226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십계명 중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다. 사실 이 10개의 계명 중 어떤 것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어떤 것은 그렇지 않게 생각한 적은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지켰나? 저건 못지키지 않았나? 하며 하나하나 따져보지도 않았다. 구약에 나오는 수많은 율법이나 이야기들은 그 당시 시대 상황에 적용된 말로서,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고,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는데 십계명도 그중 하나이다. 당장 우상을 섬긴다는 말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을 하고 모세가 보이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를 섬기는 모습을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보니 운이 좋아서, 시대를 잘 타서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계명을 잘 지키게 된걸까? 쉽게 아니라고 답을 낼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내가 조심해야되는 우상들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싶어 책을 펼친다.
소원, 사랑, 돈, 성취, 권력 그리고 문화/종교까지, 어쩌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인 것들, 우리가 쉽게 접하며 우리에게 쉽게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어떻게 우상이 될 수 있으며, 라헬이 아들을 원하는 것, 요나가 이스라엘을 숭배하는 것 등 성경 속 인물들이 이러한 것들을 섬기며 보인 모습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까지, 우상에 대한 다른 관점과 성경의 또 다른 해석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나는 우상을 숭배하나? 그렇다. 나는 적당한 돈을 벌며, 적어도 두 명의 아이를 슬하에 두고 사랑하는 아내와 하하호호거리며 지내는 모습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이를 위해 살아왔다. 어느 것 하나 욕심부리지 않고, 그냥 주어진 것들을 만족해하며 지내는 나의 모습은 탐욕적이게 돈을 바라보거나, 세상의 것들을 좇으며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에 이를 위해 주님을 믿어야돼고, 주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위험한 생각까지 갔던 것 같다. 이제야 보니 나는 우상을 섬기고 있더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다고 고백되지만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이 나였고, 내가 바라는 미래에는 주님이 함께하지 않았다. 주님과 쌓아가는 건강한 관계는 결국 세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더 성숙한 내가 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이성을 찾기 위해 형성되는 관계였다. 물론 마음 한켠으로는 이러한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주님이 보시기에 우상은 아닐까, 내가 결국 저것들을 얻게 되면 나는 하나님을 안찾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지금에서라도 그 구분을 짓겠더라.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나는 이제 우상 숭배를 안할 것인가? 아니다. 어쩌면 평생 '응'이라고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이 아닌 삶을 상상할 수 없고, 이 모든 것은 주님이 동행해주셨기에 가능한 것이고, 예수님만이 나의 소망되신다고 고백하고,삶에서 보여줘도, 마치 죄가 우리 중심에 있듯이, 작가는 우상이 언제 어디서 우리 사이에 나타날지 모른다고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을 대체하여 다른 무언가를 마음 속에 두는 것,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어렵겠지만 그 마저도 알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적어도 타인들의 경험을 통해 보고 배우며 그러한 우상들을 경계하며 지내길, 그리고 내 마음이 온전히 주님만으로 가득차고 기뻐하길, 소망하고 기도해본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
무엇이든 워낙 당신 삶의 중심이자 필수여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가짜 신이다. 우상은 마음을 지배하므로 당신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열정과 에너지, 돈과 정서적 자원을 다분히 거기에 쏟을 수 있다. 가정과 자녀, 직업과 돈벌이, 성취와 평론가의 호평, 체면과 사회적 지위가 다 우상이 될 수 있다. 로맨틱한 이성 관계, 업계의 인정,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 외모나 두뇌, 정치나 대의명분, 도덕과 가치관, 심지어 기독교 사역에서 성공하는 것도 다 우상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삶을 고치는 데 인생의 의미를 거는 것을 흔히 "상호의존"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것도 우상숭배다.
pg 12-23
2.
아브라함은 이것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지에 대한 시험임을 알았다. 마지막에 주님은 그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경외'란 하나님을 '무서워한다'라는 뜻이라기보다 그분께 전심으로 헌신한다는 뜻이다. 시편 130편 4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경험할수록 우리는 더 "주를 경외하게"된다.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사랑과 기쁨으로 외경과 경이에 젖는다는 뜻이다. 주님은 "내가 이제야 네가 세상 무엇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는 줄을 나로"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이다.
pg 48
3.
당신은 존재의 심연에서 하나님의 복을 들었는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라는 말씀이 기쁨과 힘의 끝없는 원천인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느꼈는가? 야곱이 받은 것이 바로 그 복이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그 복이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것이 되었다.
이것만이 우상숭배를 퇴치하는 묘약이다. 이 복이 있어야만 우상이 필요 없어진다. 야곱처럼 우리도 대개 '온갖 엉뚱한 데서 복을 구하며' 살다가 그 후에야 이 복을 발견한다. 마침내 이를 발견하려면 대개 다리를 저는 연약함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받은 수많은 이가 저는 다리로 기뻐 춤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pg 242
4.
나는 우리 모두에게 우상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상은 모든 사람 속에 숨어 있다. 문제는 그 우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우상의 위력 속에 머물지 않고 눈이 더 밝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상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가장 유익하게 건전한 결정과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의 우상을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첫째로 생각의 내용을 점검해야 한다. 대주교 윌리엄 템플은 "혼자 있을 때 하는 일이 곧 당신의 신앙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마음속의 실제 신은 따로 신경 쓸 일이 없을 때 저절로 흘러가는 생각이다. 당신이 즐기는 공상은 무엇인가? 무심코 당신 머릿속을 차지하는 상상은 무엇인가? 승지하는 시나리오를 쓰는가? 이상적인 주택같은 재물인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인가? 한두 가지 공상이 곧 우상숭배의 징후는 아니다. 그보다 이렇게 자문해 보라. 당신이 습관적으로 생각하면서 혼자서 속으로 기쁨과 안락을 얻는 대상은 무엇인가?
둘째로는 돈을 어떻게 쓰는지 보면 자신이 속으로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라고 하셨다. 돈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 쪽으로 저절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사실 어떤 대상에 지출하는 돈이 너무 많아 항상 절제에 힘써야 한다면 이거야말로 우상의 징후다.
사도 바울이 썼듯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사역과 자선과 빈민 구제에 아낌없이 헌금하게 되어 있다.(고후 8:7-9).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옷이나 자녀에게, 또는 집과 자동차 같은 지위의 상징물에 과소비를 한다. 평소 씀씀이를 보면 우상이 드러난다.
셋째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특히 유용한 우상 식별법이 있다. 당신은 꾸준히 교회에 나가고 있고, 독실한 교리적 신념도 다 갖췄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려 최선을 다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당신의 진짜 구언은 무엇인가? 당신은 정말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 말고 당신의 실제 신은 무엇인가?
그 답을 아는 좋은 방법이 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희망이 꺾일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된다. 기도한대로 되지 않으면 누구나 서운하고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떨치고 나아간다. 아직 삶이 끝난 게 아니며 그런 것들은 당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기도한대로 되지 않았다고 분노가 폭발하거나 깊은 절망에 잠긴다면 그것이 당신의 실제 신일 수 있다. 요나처럼 당신도 죽고 싶을 만큼 성내고 있다면 말이다.
마지막 시험은 모두에게 해당된다. 가장 통제하기 힘든 자기 감정을 보라. 고기 잡는 어부가 물이 소용도리 치는 쪽으로 가듯이, 당신의 우상도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의 밑바닥에서 찾으라. 특히 좀처럼 걷히지 않는 감정이나 뻔히 잘못인 줄 아는 행동으로 당신을 몰아가는 감정에 주목해야 한다.
화가 날 때면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뭔가가 있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만 할 것이 있는가?' 심한 두려움과 절망과 죄책감에 대해서도 똑같이 하라. '내가 이토록 두려운 이뉴는 꼭 필요한 게 아닌데도 필요하다고 여기던 내 삶의 뭔가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인가? 내가 이토록 침울한 이유는 꼭 필요한 게 아닌데도 필요하다고 여기던 뭔가를 잃었거나 거기에 실패했기 때문인가?' 당신이 과로로 쓰러질 지경으로 미친 듯이 일하고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라. '나는 이것이 있어야만 만족과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져서 '자신의 감정을 뿌리째 뽑아 보면' 대개 거기에서 우상이 쭉 딸려 나온다.
pg 246-249
5.
결과가 두려워 회개한다면 정말 죄를 슬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딱하게 여기는 것이다. 두려움에 기초한 회개("하나님께 혼나기 전에 고치는 게 낫다")는 사실 자기 연민이다. 두려움에 기초해서 회개하면 죄 자체를 미워할 줄 모르기 때문에 죄의 매혹적인 위력은 그대로 남는다. 자신의 신상을 위해 죄를 삼갈 뿐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적 고난과 사랑을 기뻐하면 즉,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그분이 치르신 대가를 보면 죄 자체를 미워하게 된다. 그분이 담당하셔야 했던 죗값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가장 확증해 주는 것도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이고, 죄의 해악을 가장 깊이 깨우쳐 주는 것도 역시 그분의 죽음이다. 두려움에 기초한 회개는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지만 기쁨에 기초한 회개는 죄를 미워하게 한다.
pg 252-253
6.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바닥에 닿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믿기로 이 땅의 삶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계속 땅을 팔 줄을 알아서 점점 더 심연에 근접해 가는 사람이다.
pg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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